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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설매리 여사 소천

  • 작성자 : 홍보실
  • 조회수 : 4,576
  • 09-29


 



<속보> 설매리 여사 소천


 


예수병원 12대 병원장을 역임한 설대위(David John Seel) 박사의 미망인 설매리(Mary Batchelor Seel) 여사가 한국 시간으로 9월 28일(월) 오후 11시 30분에 소천했다.


설매리여사는 미국 앨라바마 버밍햄의 차녀 크리스틴(Christine, 버밍햄 의과대학 교수) 부부와 함께 살면서 간암 수술을 받고 투병하였는데 최근 병세가 악화되어 버밍햄 의대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84세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설매리 여사의 장례식은 10월 4일(일), 기념예배는 10월 11일(일)에 거행될 예정이다. 예수병원은 10월 11일 미국 현지의 추모예배에 김민철  병원장을 비롯한 조문단을 보낼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장남 존 실 2세(John Seel Jr, 51세, 작가, 대학교 교수)와 장녀 제니퍼(Jennifer, 49세, 교사), 크리스틴(Christine, 의과대학 교수)가 있다.


< 설메리 여사 유족에게 조의금을 보내실 분은 (국민은행 7519-9095-1827-13 윤석봉)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설매리 여사님의 사랑의 발자취


 


한국전 직후인 1954년, 황폐한 대한민국의 전주, 예수병원에 설매리 여사는 남편 설대위 박사와 함께 도착했다. 설매리 여사는 남편과 함께 전쟁 후 폭발물 환자, 굶주림에 기력을 잃은 아이, 무수한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느라 수많은 날들의 밤을 지새웠다.


당시 예수병원은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와 여관이나 병원입구 계단에서 입원실이 빌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진찰실은 항상 만원이었지만 매일아침 일과는 온 병동을 울리는 기쁨의 찬양으로 시작됐다.


설매리 여사는 예수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예수병원의 진단검사의학과와 병리과를 개설하고 기틀을 세우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했으며 1958년에는 몸을 돌보지 않는 과로로 인해 심각한 요통을 얻기까지 했다. 설대위 병원장은 설매리 여사의 헌신적인 내조에 힘입어 예수병원에서 탁월한 능력의 경영자로서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국경을 초월한 인술을 펼쳐 한국의 슈바이쳐라고 불렸다.


설매리 여사는 남편과 함께 36년간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피폐한 전주에서 의료와 선교에 헌신했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따스한 손길로 환자를 감싸 안아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인자한 어머니였다. 설매리 여사는 뜨거운 정열로 그녀의 젊음 전부와 전 생애를 예수병원에 헌신했다.


황폐한 우리나라에 바다 보다 더 큰 사랑을 가슴에 품고 전주에 왔던 부부는 선교사로서 모든 소망과 꿈을 이루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선진국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1990년에 흐뭇한 마음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까지도 예수병원을 위해서는 아낌없는 지원과 기도로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다했다. 줄곧 든든한 어른의 위치를 지켜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몬트리트 조용한 시골 마을의 노 부부 아담한 집에는 지금도 한글 이름의 문패가 걸려 있다. 미국에서도 노 선교사 부부는 대한민국과 전라북도와 예수병원을 그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한 영원한 진정한 예수병원인, 전북도민, 한국인이었다.


 


- 사랑하는 설매리 여사님! 예수병원에서 그 한없는 무한사랑의 꿈을 고이 접으시고 이제 주님의 품안에서 더 큰 평안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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